조지 오웰의 대표작 ‘동물농장’에서 매우 중요한 상징성을 가진 매개체는 바로 풍차이다. 동물농장은 풍차의 건설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궁핍해졌으며, 그 결과로 부를 독점한 돼지들과 착취당하는 동물들 간의 빈부격차가 고착화 된다. 인간들과의 전투에서 풍차는 한번 파괴되었으나 동물들은 풍차를 포기하기는 커녕 오히려 풍차 건설에 더욱 집착하게 된다. 무리한 풍차 건설로 인해 삶은 더욱 힘들어질 뿐이나 동물들은 풍차만 완성되면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인간은 ‘압도적 전환점’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다. 어떤 특별한 전환점만 찾아온다면 그들의 인생이 바뀔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고대인들이 인신공양을 했던 것처럼, 전환점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무언가 희생을 치뤄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인간들은 동물농장의 풍차와 같은 거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다. 처음에는 분명 나름대로 현실적인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프로젝트였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목적은 점차 사라지고 남은 것은 오로지 ‘존재 가치’ 뿐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던 그 집착을 버리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동시에 지금까지 바친 희생에 대한 강렬한 보상 심리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더 큰 희생을 정당화 한다. 존재 가치는 광기로 변하고 이제 스스로의 의지로 멈추는 일은 불가능하다. 계속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지는 파탄을 맞기 전까지는.

유럽 상인들이 아프리카에 건너갔을 때, 그들은 원주민들이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모습을 보았다. 자신들이 만들었으되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여 숭배하는 그 우상을 페티쉬(fetish)라 불렀다. 특정한 요소에 대한 집착을 의미하는 단어 페티쉬즘은 여기서 비롯된 말이다. 본래의 페티쉬는 초자연적인 힘을 전제로 한다. 그 점에서는 동물농장의 풍차도 페티쉬의 일종이다. 그래서 인간 사회, 특히 정치에도 페티쉬즘이 존재한다. 정치 집단이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정책을 선택하는 대신 특정 정책을 유일무이한 목적, 그 집단의 존재 가치로 설정하고 그것을 위해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 현상을 의미한다. 가장 대표적인 정치적 페티쉬즘은 다름아닌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집착, 즉 nuclear fetishism일 것이다. 사실 핵무기는 1945년 나가사키에 투하한 사례를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사용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실전에서는 투입될 수 없다는 것이 기본 전제이다. 정작 실전에서는 사용하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핵무기를 갖기만 하면 자기들의 격이 올라갈 것이라고 믿는다. 핵무기에 얽힌 기대들 들어본다면 그것이 실제 전략이라기 보다는 근거없는 신앙에 가까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핵무기는 틀림없는 페티쉬즘이다.

페티쉬즘의 뿌리에는 그 페티쉬를 달성하면 전환점이 찾아올 것이라는 근거없는 믿음이 존재한다. 김정은의 핵무기에 대한 집착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정치 집단들은 특정 프로젝트를 자신들의 존재 가치로 설정한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기대하는 만큼의 보상이 주어지리라 기대한다. 올림픽도 그러한 예들 중의 하나이다. 올림픽을 유치하여 번영을 구가하는 나라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사례도 많다. 특히 그리스와 브라질은 올림픽 개최 후, 번영은 커녕 오히려 극심한 경제난을 겪게 되었다. 어쩌면 올림픽도 페티쉬일까? 평창올림픽을 정치 홍보의 무대로 활용하기 위해 필사적인 문재인 정권의 모습을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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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자를 ‘적폐’라 부르며 기업들이 스포츠에 후원한 것을 꼬투리 잡아 탄핵까지 몰고 간 문재인 정권이 기업들로부터 후원금을 걷는다는 사실 자체가 벌써 지독한 모순이다. 조선일보의 기사에 의하면, 아직도 500억원의 추가 후원금을 더 걷어야 한다고 한다. 결국 기업들의 후원이 없으면 국제대회 하나 만족스럽게 개최할 수 없다는 냉정한 현실만 드러내고 말았다. 돌이켜 보면, 문재인 정권은 취임 초기 때부터 기업들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왔다. 2016년 6030원이었던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1만원으로 올리겠다고 선언했으며 공기업과 사기업들에게 어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윽박질렀다.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임명된 한성대학교 교수이자 참여연대 소속의 폴리페서 김상조는 기업들에게 정부에게 도전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는 통상 문외한인 에너지공학과 교수 백운규를 임명했다. 법원은 노조와 기업들의 소송에서 계속 노조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가장 충격적인 사례는 8월31일, 기아자동차 노조가 기아자동차 상대로 낸 소송 1심에서 노조에게 4223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의 승소 사례를 바탕으로 추가 소송을 벌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므로 기아자동차의 손실액은 1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기업들이 잔뜩 움츠러든 상태에서 올림픽에 투자할 리 없다. 아니, 정부가 시키는대로 투자 했다가 검찰과 법원에게 묵시적 청탁을 간파당하기라도 한다면 어떡하란 말인가?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삼성그룹은 어느 승마 기수를 지원했다가 ‘묵시적 청탁’을 간파당한 탓에 회장이 아직까지도 구속 중이다. 그런데 이제는 평창올림픽을 위해 후원금을 내라고 하니 이 정권이 진정으로 ‘적폐 청산’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물론 평창올림픽에 집착하는 이유가 아주 짐작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권은 국내에서는 점령군에 가까운 권세를 누리고 있지만 정작 외교면에서는 거듭된 실패가 누적되어 대통령 취임으로부터 반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권위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상태이다. 북핵 위기라는 심각한 위기 속에서 문재인의 절대적인 외교 경험 부족과 외교부 장관 강경화의 무능은 순식간에 한국을 고립시키고 말았다. 게다가 지금까지 문재인의 사상적 근간이었던 어설픈 민족주의와 미국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친중세력으로 분류되는 외교 특보 문정인과 국방부 장관 송영무가 충돌하는 사실상 레임덕에 가까운 사태까지 일어났다. 미국으로부터는 전략적 파트너 대접을 받지 못하고, 동시에 친중정권으로 분류됨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관계는 오히려 박근혜 정권 시절보다 더 후퇴했다. 지금 문재인 정권이 처한 상황에 가장 가까운 사례는 문화대혁명 초기의 중국이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강력한 개인숭배와 가혹한 반대파 탄압으로 권력을 다졌으나 외교면에서는 고립되어 가고 있는 점이 대단히 유사하기 때문이다.

모택동이 주은래의 외교력 덕분에 문화대혁명으로 노쇠해진 통치력을 다소 회복한 것처럼, 문재인도 평창올림픽을 통해 활로를 찾고 있다. 하지만 올림픽을 통해 이루고 싶은 야심은 크되 현실은 버겁다. 제72회 UN 총회에서 아무런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던 촛불정권 자화자찬을 올림픽을 통해 기필코 다시 할 생각이다.  거기에 국제사회의 흐름을 깡그리 무시한 ‘남북화해’라는 무모한 이상주의까지 끌어들였다. 북한 정권의 계속되던 무력 도발 및 끊이지 않는 인권유린에 대해서도 줄곧 침묵을 지켰던 문재인의 모습을 보면 현재 대한민국이 당면한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슬그머니 모른 척 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특히 북한에서의 인권 유린 끝에 뇌사 판정을 받은 오토 웜비어 청년이 2017년 6월19일 결국 숨을 거두었는데도 6월21일 도종환 문화체육부 장관이 일부 종목을 북한 마식령 스키장에서 개최할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으며 6월24일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남북단일팀을 언급했다. 이러한 일련의 태도들을 보면 문재인 정권은 평창올림픽을 오로지 정권 홍보의 무대로 밖에 보지 않는다고 짐작할 수 있다. 북핵 위기가 심각해져가는 가운데 어설픈 대북 유화정책은 국제사회의 반발만 부른다. 어쩌면 집단 보이콧마저도 각오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이 어느 정도까지 이러한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미 김정은이 핵무기에 집착하는 것처럼 문재인도 올림픽에 집착하고 있다. 김정은이 핵무기만 손에 넣는다면 모든 난관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 것처럼 문재인도 평창올림픽만 치뤄내면 자신의 권위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결코 평창 페티쉬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그의 정치 인생이 그랬다. 그는 타협은 곧 변절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자신이 가는 길이 아무리 무모하다 하더라도 도중에 멈추는 것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일이 된다. 그의 지지자들도 타협을 모르는 광기를 가진 집단이다. 문재인은 노무현 덕분에 권력에 다가갔고, 노무현의 자살 이후에는 그의 모든 것을 물려받으며 야권의 거물로 급부상했다. 비록 야권에서 다른 경쟁자들에게 밀려난 적도 있었으나 노무현 지지자들을 흡수한 그는 권력을 향해 다시 돌아왔고 대통령까지 되었다. 파란만장한 정치 인생 속에서 그는 오로지 자신의 라이벌들을 배척하는 독선으로 일관했으며 한번도 협상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 평창올림픽에 대한 그의 집착 또한 추호의 타협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물농장에서 풍차를 건설하기 위해 어떤 일들을 벌이는지 소개하며 그것을 문재인 정권의 실정과 비교하고 싶지만 대단하 얹짢으며 어두운 내용이므로 피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적어도 문재인 정권이 국제사회의 동향을 파악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 제재에 반기를 드는 짓만은 피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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