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탄생에 의해 한일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가. 내가 면담했던 적에는 일본에 대해서는 역사문제와 영토문제 이외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문재인이 대선 유세 때 어떤 발언들을 했는지 검토하고자 한다.

2012년 대선 때에는 일본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 ‘친일청산’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노무현 정권이 시도했던 친일파와 과거사 정리를 위해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주장했다. 요컨대 반일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의미였다. 또한 최순실 사건이 터지기 전 2016년7월에는 독도에 상륙하여 시설을 시찰하고 방명록에 “동해는 우리 땅”이라고 적기도 했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는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을 방문하고 친일청산을 강조하려 했다.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조약(Vienna Convention on Diplomatic Relations)에 의하면, 공관 접수국은 외국 외교 공관의 안녕의 침해, 공관의 위험을 해치는 행위를 방지해주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한국 국내법으로도 도로에 제멋대로 설치물을 두는 행위는 불법이다. 위안부 소녀상은 한일 위안부 합의의 내용에도 위배될 뿐만 아니라 외교관계의 일반적인 상식으로도 문제가 될 소지가 많다.

부산의 일본총영사관은 부산시 동구에 있다. 한국 법에 의하면 도로를 점거하는 설치물의 허가를 내주는 곳은 구청이다. 부산시장, 동구청장 모두 당시 여당인 자유한국당 소속의 인물들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한국외교부는외교 조약과 국제 외교 관례에 눈을 감고 소녀상 문제를 부산 동구에 떠넘겼다. 12월28일, 무허가로 설치된 소녀상은 부산시 동구청 직원에 의해 강제 철거되었고 구청에서 보관하게 되었다.

이에 위안부 관련 시민단체가 격렬히 항의했고, 페이스북을 통해 동구청을 강력히 비난하던 인물이 다름아닌 문재인이었다. 당시 그는 대선후보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었다. 문재인은 12월28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소녀상은 살아있는 역사교과서이다. 부산시민의 소녀상 설치는 진정한 의미의 독립선언이다. 부산시 동구청과 그 배후세력은 소녀상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런 것이 바로 청산되지 않은 친일행위인 것이다. 소녀상에는 나라를 대신하여 위안부들의 고난을 위로하려는 국민의 마음이 담겨있다. 부끄러운 역사를 딛고 당당한 독립국가로 나아가달라는 희망이 담겨있다. 부산시 동구청은 당장 소녀상 설치를 허가해야 한다. 적폐를 청산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하는 부산시민의 손을 잡으라.”

양쪽에서 압력을 받은 꼴이 된 동구청장은 결국 30일에 소녀상 설치를 허가했다. 나는 부산 시민들의 항의보다도 차기 대통령이 유력하던 대선 후보의 직설적인 비판이 더 큰 압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 후로도 문재인은 블로그나 페이스북을 통해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일본의 법적 책임 인정과 공식 사과가 없다”, “양국간에 무슨 합의가 오갔는지 외교부는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여 한일 위안부 합의를 “대표적인 외교 적폐”라 불렀다. 2017년 1월에는 다시 소녀상을 방문하여 “소녀상이 외롭지 않도록 다같이 관심을 갖고 지켜나갑시다”는 발언도 했다. 이런 자가 지금의 대통령인 것이다. 문재인의 한국에 대해 일본은 상당한 각오를 해야 한다.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한일관계에 대해 “한국인들은 언제까지나 일본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나의 한국에서의 체류와 외교관으로서의 경험을 통해 되돌아보면 한국 국내에서의 일본에 대한 반감은 착실히 개선되고 있으며 현재 한국의 반일감정은 일부 일본인들이 주장하는 것만큼 심각한 상태가 아니다. 한국인은 일본에 대해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나누어 보고 있다. 다만 현직 대통령의 자세가 외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대립과 항쟁의 역사인 한국 정치의 특성상, 현직 대통령이 한일관계의 개선을 추진하면 반대파는 어디까지나 권력투쟁의 수단으로서 대일외교를 경직시키려 든다. 그때마다 ‘친일’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 것인데 이는 일본에 대한 비판보다는 정적을 공격하는 수단에 더 가깝다. 이러한 한국 국내의 친일논란에 일본이 정면으로 반발하면 그만큼 한국 국내의 반일감정이 실제로 올라가기 때문에 일본은 냉정하게 방관하는 편이 더 현명하다 할 것이다.

현재의 한일관계에서 갈등이 심한 부분은 정치, 역사, 영토 세가지이다. 반면 문화적으로 양국 사이의 교류는 나날히 증가하고 있으며 상호간의 이해도 또한 계속 올라가고 있다.

나 개인의 견해를 밝히자면, 한국인은 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에 대해서는 확실히 일본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한일관계가 좋냐 나쁘냐에 대한 여론조사가 있을 경우,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위안부 문제와 독도 문제만을 떠올리기 때문에 ‘나쁘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러한 여론조사에 한일 양국의 문화 교류를 비롯한 우호적인 면은 반영되지 않는다.

특히 2015년12월28일, 서울에서 체결된 위안부 문제에 관한 양국간의 합의는 박근혜 정권의 대일정책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이며 동시에 한국 국내에의 반일감정 문제가 크게 개선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외교관으로서, 그리고 한일관계 발전에 노력해온 사람으로서, 위안부 합의이야말로 획기적인 성과라고 평가하고 싶다. 이 합의가 양국 관계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기에,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보수진영을 공격하던 세력은 끈질기게 이 합의를 공격하게 된 것이다.

위안부 합의가 획기적이라고 보는 이유는, 이것은 한일관계에서 최초로 양쪽이 ‘양보’한 외교적 성과이기 때문이다. 합의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본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나 한국정부가 지금까지 요구해온 법적책임에는 언급하지 않는다. 일본측도 지금까지 주장해온 도의적 책임을 더 이상 내세우지 않는다.

-한국정부는 재단을 설립하여 일본정부가 출자한 10억엔의 지원금을 위안부 출신 여성들에게 지급한다. (1993년 고노 담화,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를 통해 일본은 보상 사업 명목으로 ‘아시아여성기금’이라는 재단을 설립했으나 당시 한국 정부가 정대협의 반대를 받아들여 아시아여성기금에 협력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일본정부에 직접 사죄와 보상 책임을 떠넘겼다.)

-이 합의는 최종적이며 그리고 불가역적 합의이다. (이 조항을 넣은 이유는 한일 양국이 합의한 사안을 다음 정부가 파기하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양국은 서로를 비판하지 않는다. (박근혜 정권은 그때까지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위안부 문제 및 역사문제를 제기해왔다. 일본정부는 이것을 ‘고자질 외교’라 부르며 비판해왔다.)

-한국 정부는 위안부 소녀상 철거를 위해 노력한다. 한국 국내에서 소녀상을 즉시 전부 철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일본 공관의 안녕과 위엄을 지키기 위해 한국 정부는 최대한 협력하며, 장래에도 지속적으로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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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한일관계가 악화되었을 때에는 주로 일본측이 어느 정도 양보함으로서 한일관계가 다시 회복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위안부 합의는 근본적으로 접근법이 달라졌다. 일본만이 양보하는 게 아니라 한국도 상당히 양보하고 있다. 또한 지속적으로 실천해나갈 수 있는 현실적인 합의도 이루어졌다. 이는 위안부 문제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한일 양국의 외교에서도 이상적인 합의 모델로서 전례를 남길 수 있는 놀라운 진보이다.

2015년은 한일양국 수교정상화 50주년의 해이며 종전(2차세계대전이 끝났다는 의미. 한국의 광복) 70주년의 해이기도 했다. 양국 고위관료가 각기 상대편 대사관의 수교정상화 50주년 리셉션에 출석한 일을 계기로 한일 양국의 관계 개선의 조짐은 보이고 있었다. 또한 아베 신조 총리도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언급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이러한 아베 총리의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대일외교가 ‘고자질 외교’에서 급격한 전환을 맞게 되었다.

이러한 극적인 변화는 박근혜 대통령의 결단이 가져온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과장이 아니다. 한국정치에서 이 정도로까지 큰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직위는 대통령 뿐이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이 솔선하여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였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박 전 대통령은 비판적인 여론을 견디며 국민들과 위안부 출신 여성들을 설득하였다. 정대협 및 정대협 소속 위안부 출신 여성들은 이 합의를 “당사자들인 우리들에게 상담도 하지 않고 위안부 문제의 불법성 법적책임을 빼놓고 합의한 것은 배신이다”, “소녀상 철거에 협력하겠다고 한 점도 굴욕적이다”고 비난하였으나 박 전 대통령은 “외교부가 15번이나 위안부 여성들과 만났다”고 반박하고 “합의는 최선을 다한 결과이며 이것을 무효라고 한다면 앞으로 어느 정부가 이러한 민감한 문제에 나설 수 있겠는가”고 국내 여론을 설득하였다.

정대협과 박 전 대통령 주장들 중 어느쪽 주장이 더 합리적인가는 명백하다. 한국 국내여론도 현실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외교 성과로서 위안부 합의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한국 언론들은 “전부 찬성하는 건 아니지만 합의 자체는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 갤럽이나 중앙일보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위안부 합의 반대가 50% 이상 나오긴 했지만 원래 이러한 일본에 관련된 여론조사는 부정적 반응이 70% 이상 나온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국민들도 이 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일본에서만 한국을 본다면 한국인의 반일감정의 복잡함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인은 ‘일본 좋은데’ 혹은 ‘일본측 입장이 옳다’고 속으로는 생각하고 있어도 공공장소나 여론조사에서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를 꺼린다. 일본에 대한 호감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는 일종의 매너 같은 것이다. 일본을 진심으로 비판하는 것은 소수의 강경파들 뿐이고 그들의 주장의 워낙 거세기 때문에 다른 의견들이 묻히는 것 뿐이다. 게다가 박근혜 정권의 설득을 받아들여 대부분의 위안부 여성들이 합의를 받아들이겠다고 표명했다.

일본 정부의 10억엔 출자금을 받아 2016년7월부터 한국 정부가 설립한 ‘화해와 치유 재단’은 12월23일 생존해 있는 위안부 출신 여성 39명(합의 발표 당시에는 46명) 중 34명이 지원금 1천만엔을 받는 일에 동의했음을 언론에 발표했다. 이 34명의 명단 중에는 위안부 합의에 비판적인 정대협과 행동을 같이 하는 나눔의 집 소속 위안부 출신 여성 5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거의 대부분의 위안부 출신 여성들도 한일 합의를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한일 위안부 합의에 비판적인 정대협 및 강경파들은 지극히 일부인 소수일 뿐이다. 이 시점에서 위안부 문제는 사실상 해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일본 정부는 위안부 소녀상 철거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조속한 합의 이행을 위해 먼저10억엔을 내겠다는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 여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일본 정부가 협상을 이유로 출자금을 내지 않으면 결국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한일 긴장 관계를 조장하고 싶어하는 정대협에게만 유리해진다. 일본 정부가 소녀상 철거를 선결 과제로 요구한다면 한국 국내에서의 박 전 대통령 입지가 불리해지고 결국 한일 합의가 와해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정대협은 다시 세력을 되찾을 것이 분명하다.

두번째 이유는, 이 한일 위안부 합의는 양국 정부 간의 ‘합의’라는 점이다. 양국 정부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기로 합의한 이상, 일본 정부는 자신의 몫을 이행하는 편이 유리하다. 설령 박근혜 정부가 국내 여론을 설득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일본 정부는 합의를 이행하고자 노력한 것이다. 반대로 일본 정부가 출자금을 내지 않아 합의가 무너진다면 일본 정부에게 비판이 향할 것이다. 그럴 경우, 국제사회가 정대협이 요구하는 해결책을 지지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일본의 국익은 심각한 손해를 입을 것이다.

따라서 일본 정부는 일본 국내의 비판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소녀상 철거 이전에 솔선하여 출자금을 낸 것이다. 그것은 일본 정부가 그만큼 합의 실현에 성의를 갖고 있다는 뜻도 된다. 그렇기 때문에 2016년의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의 소녀상 설치는 한일 위안부 합의의 기본 정신을 심각하게 저해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부산의 소녀상 설치 문제를 비롯한 현 시점에서의 위안부 관련 문제는 사실상 한국 국내 보수파와 진보파의 대결의 일부이다. 진보진영은 “나쁜 대통령의 정책은 모두 나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한일 위안부 합의도 나쁜 정책으로 공격을 받고 있다는 점은 참으로 유감스럽다.

한일 위안부 합의가 상당히 신속하게 이루어진 배경을 보면, 이미 수많은 한국인들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위안부 문제는 오히려 일본에서 더 크게 조명받으며 한국 국내에서는 큰 뉴스가 되지도 않는다. 더구나 위안부 할머니들이 남은 여생을 편하게 보내는데 도움이 된다면 – 무엇보다도 위안부 할머니들이 그것을 원하고 있는데 – 한일 위안부 합의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한편 부산 총영사관 앞에 소녀상이 설치되기까지 정대협은 총 16개의 소녀상을 세웠으나 일반 국민들의 관심을 끄는 데에는 실패했다. 그래서 정대협은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본 총영사관 앞에 소녀상을 설치하는 퍼포먼스를 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정대협 같은 시민단체가 정부를 압박하여 외교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던 역사가 있다. 그러나 정대협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멀어지고, 한일 양국 정부의 노력으로 위안부 문제의 정치적 이용가치가 급속히 떨어지자 존재 가치를 잃을 위기에 처해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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