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정치활동은 늘 노무현의 뒤를 따르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권 초기에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내며 국내정치를 관장하던 인물이 바로 문재인이다. 2007년10월, 노무현은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총서기와의 사상 두번째의 남북정상회담을 했다. 2개월 후의 대선에 영향을 미치고 싶어하는 의도가 역력했고 실제로 이명박 후보는 미묘한 시점에서의 남북회담에 반대했다. 노무현은 남북회담을 강행했는데 이 회담을 실질적으로 추진한 사람도 당시 비서실장, 그리고 남북정상회담추진위원회 위원장이던 문재인이었다.

한국 정치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대통령의 외교 활동을 책임지는 자리는 외교안보수석비서관이지 비서실장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서실장 문재인이 대북관계에 한해서는 늘 전면에 나서고 있다. 노무현이 문재인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가 보여주는 것이며 또한 동시에 북한에 대한 노무현과 문재인의 관점이 일치한다는 것도 의미한다. 노무현은 “북한의 핵개발은 자기방어를 위한 것이고 따라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한 인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불행한 최후를 맞았지만 한국사회에서 아직도 그의 인기는 높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노무현 지지층은 주로 386세대 (90년대 당시 30대, 80년대에 대학을 졸업한, 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로 알려져 있는,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체혐한 세대이다. 그리고 그 386세대를 중심으로 인터넷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보인 집단들도 포함한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노무현을 둘러싼 의혹들은 이명박 정권의 정치공작에 의한 것이다. 그래서 노무현 지지자들 중에는 ‘노무현이 이명박 정권에게 살해당했다고’ 아직도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에게 자신들이 신봉하던 지도자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오히려 ‘비극의 정치인’으로서 전설화되는 것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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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이 최순실 사건 직후 빠르게 지지를 모은 점도 되짚어보면 그가 노무현의 최측근이었고 스스로 노무현의 유지를 잇겠다고 말했던 것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는 문재인 이외에도 노무현 정권 탄생에 기여한 안희정 충남지사와 과격한 발언으로 주목받던 이재명 성남시장 등이 참여했으나 결과는 문재인의 압승이었다. 그만큼 문재인은 비극의 주인공 노무현의 후계자라는 인식이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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