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항상 미소를 짓고 다니며 친근감을 보인다. 상당한 미남이라는 평판도 있는 듯 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그의 정치활동 및 공약들을 보고 있으면 실제로는 과격파라는 인상을 떨칠 수 없다. 문재인이란 어떤 인물일까?

1953년 한국 남부 경상남도 거제도 출신이지만 양친은 북한 함경남도 출신의 소위 ‘실향민’ 출신이며 지금도 그의 숙모는 북한에 살고 있다. 어릴 때의 생활은 어려웠다고 한다. 부산의 경남고교를 졸업 후, 장학금을 받아 경희대 법학부에 진학. 재학 중이던 1975년에는 당시의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는 사회운동에 참가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그리고 4개월간 투옥되었다. 석방 후, 병역을 마치고 복학한 다음에도 학생운동에 참가하여 다시 체포되었다. 형무소에서 사법시험 준비를 시작하여 출소 후 1980년에 대학을 졸업했다. 사법고시에 합격하지만 체포 경력 때문에 검사나 판사로는 채용되지 못하고 부산에 돌아가 변호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인권변호사로 이름을 얻고 있던 노무현과 만나 82년에는 합동법률사무소를 설립했다. 노무현과 문재인 둘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당시의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운동을 이끌었다.

노무현 변호사는 87년 민주화 선언 및 헌법개정(제6공화국 헌법) 이후 88년 총선에 출마하여 정계 입문에 성공한다. 그 후로도 문재인은 변호사로서의 활동하고 있었는데 2002년 노무현이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자 노무현 캠프에 들어가 최측근이 되었다. 노무현의 당선 후에는 청와대 비서실의 민정수석비서관, 시민사회수석비서관 등을 역임했고 2007년에는 비서실장이 되었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 친족과 가족들이 뇌물 수수혐의로 체포되고 그 자신도 검찰의 조사를 받자 결국 2009년5월 투신자살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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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노무현 대통령 퇴임 후에는 정계를 떠나 있었으나 노무현의 국민장을 실질적으로 주관한 후에는 기념재단 ‘사람사는세상 노무현 재단’의 상무이사, 이사장을 역임하며 노무현의 유지를 잇겠다며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2011년9월, 노무현 지지세력을 결집시키는 모임 ‘혁신과 통합’을 조직하며 그 대표에 취임했다. 같은해 12월에는 구 민주당 세력, 시민운동 세력, 한국노동조합총연합 등의 단체들과 합쳐 민주통합당(나중에 다시 민주당으로 개칭)을 창당하고 2012년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 및 당선 되었다.

2012년의 18대 대선에 도전할 것임을 발표하고 민주통합당 경선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진보 계열 후보의 단일화를 내세우며 당시 무소속이던 안철수 후보의 대선 사퇴를 계기로 유력 후보로 떠올랐으나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했다. 2014년, 민주당은 안철수가 중심이 되어 새정치 민주연합으로 바귀었으나 내분이 일어나 결국 안철수 세력은 지도부에서 물러났다. 문재인은 2015년 다시 당 대표로 복귀하지만 보결선거에서 패배했다. 이 일로 안철수는 탈당했고 국민의당을 창당하게 된다.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은 더불어민주당으로 명칭을 바꾸었고 문재인은 2016년1월에 대표를 사임했다.

그 후, 앞서 설명한 새누리당의 내분, 그리고 최순실 사건에 의해 더불어민주당은 크게 세력을 회복했고 18대 대선에서 박근혜에게 패배했던 문재인에 대한 지지율 또한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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