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문재인을 선택한 한국 국민들이 자신들의 선택이 갖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점이다.

한국인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다. 논리적으로는 이해해도 감정으로 받아들일 수 없으면 문제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려고 한다. 이는 정치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반인조차도 친한 인간에게는 매우 헌신적이지만 그 후한 인정에 논리적인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일 관계를 보아도 (특히 독도문제와 역사문제) 일본측이 논리로 설명을 거듭하여 한국측이 이해를 표명한 안건도 결국 다시 협상 테이블로 되돌아온다. 게다가 한국인은 한번 격앙하면 앞뒤를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한국인 특유의 감정에 휩쓸리기 쉬운 성향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서 19대 대선에 이르기까지 강하게 작용했다.

최순실 사건으로 인해 2012년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던졌던 ‘일반인’들, 특히 정치적으로 중도층에 속하는 사람들마저 강렬한 분노에 휩싸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저 유명한 한강의 기적으로 알려진 경제발전을 실현시킨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녀이다. 한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이며 동시에 청빈한 이미지, 부모를 암살로 잃은 과거를 딛고 일어났다는 경력 등으로 보수진영에서도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2012년 박근혜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근소한 차이로 누를 수 있었던 것은 경제민주화, 빈부격차 시정, 사회통합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었다. 특히 창조경제로 알려진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고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중도층이 문재인 후보의 공약보다 박근혜 후보의 공약을 더 지지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박대통령을 지지하던 중도층이 떨어져 나가는 사건들이 차례로 발생했다. 세월호 침몰사고에서는 초기 대응의 실수(일본에서 ‘공백의 7시간’으로 알려진 것)가 두드러졌고, 2015년 봄의 중동호흡기증후군 MERS의  유행, 2016년의 가습기 살균제에 의한 사상자 발생 사건 등으로 중도층은 국민행복시대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

더 큰 문제는 갈수록 심해지는 한국사회의 굴절이었다. 기업과 국민간의 격차가 벌어졌고, 사회에 대한 절망이 깊어지며, 정경유착이 심하다는 인식 및 엘리트 계층에 대한 미움 등이 쌓여있다가 폭발한 것이 최순실 사건이었다. 언론의 보도에서는 최순실 모녀가 얼마나 풍족한 생활을 하였는가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이것이 국민들의 강렬한 반감을 사게 되었다.

불신감이 깊어진 또다른 원인으로는 박근혜 대통령의 독특한 정책 결정, 통치 스타일에 대한 반감도 있었다. 신뢰하던 부하에게 암살당한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믿었던 인물들이 자신에게서 등을 돌리던 체험 등으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까지의 대통령들에 비해 극단적으로 측근들과의 거리를 두는 편이었다. 초기에는 인기의 원인이었던 소위 ‘불통 정치’가 역효과를 낸 것이다. 2014년의 총선 때에는 당시의 여당 새누리당 내부의 분열을 막지 못하고, 총선에서 자신에게 반기를 들던 비박파 축출에 나선 결과, 총선 패배를 불렀다. 지금까지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에 유난히 강해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었으나 총선 패배 때부터 지도력 저하가 우려되기 시작했다. 중도층은 물론이고 보수 성향이던 언론까지도 박근혜 정권에게서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이렇다 할 실적도 남기지 않은 것으로 보일 것이다. 특히 한국 국내에서는 그러한 인식이 강하여 ‘나쁜 대통령 박근혜’의 정책은 모두 나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특히 대세를 이루고 있다.

한국 정치는 대립과 항쟁의 역사이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는 전 정권의 인사들을 재기하지 못할 정도로 숙청하는 역사는 왕조 시대 때부터 존재했다. 현재 박 전 대통령은 피고인 신분이며 보수세력은 분열 중이다.

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책들은 나쁜 정책들로 부정해버리기에는 그 성과들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기존의 고자질 외교(역자 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제 무대에서 일본의 역사문제를 자주 공론화 하던 것을 일본에서는 ‘고자질 외교’라 불렀다)에서 탈피할 수 있었고, 특히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큰 결단을 내려주었다. 역설적이게도 그 대담한 결단 때문에 박 전 대통령은 친북세력의 표적이 되어 총공격을 받게 되었다.

임기 초기의 박 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핵무기 개발에는 적극 반대하되, 김정은 정권과의 관계 개선을 중시하고, 여론에 좌우되는 일 없이 대화와 교류, 인도적 지원을 통해 단계적으로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정책은 2016년1월6일이 행해진 북한의 4번째 핵실험(수소폭탄)을 기점으로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그리고 2월7일,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박근혜 정권은 단호한 자세를 보이며 김대중 정권 이래의 햇볕정책의 산물이었던 개성공업단지 사업을 전면 중지했다.

개성공단 철수는 남북관계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결단이었다. 이 공단은 한국기업 120개가 진출하여 북한 노동자 54000명을 고용하는 남북경제교류 사업이었다. 2000년 6월 행해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김대중과 김정일)에서 합의된 것으로 2004년 12월부터 운영되기 시작했다. 이 공단을 통해 지금까지 약 616억엔의 자금이 북한으로 흘러들러갔으며 그 자금의 대부분은 핵무기 개발에 투입된 것으로 파악된다. 개성공단 뿐만 아니라 북한 정부는 러시아, 동유럽, 동남아시아 등에도 노동자들을 파견하여 가혹한 조건에서 외화벌이를 시키고 있는 형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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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은 한국과 북한 사이에 남겨진 최후의 교류 창구였다. 이 공단을 폐쇄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모든 교류를 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근혜 정권이 대북 심리전을 강화하기로 결정하면서 한반도의 긴장감은 급속히 올라갔다.

박 전 대통령은 북한의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후, 2016년 2월16일, 국회 연설을 통해 핵무기 개발이 북한 정권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 전 대통령이 ‘체제 붕괴’를 언급한 것에 대해 한국 언론은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논평했다. 박근혜 정권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포기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3월2일, UN 안보리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가 선택되어 국제적인 포위망이 한층 더 좁혀졌다.

그것에서 멈추지 않고 박근혜 정권은 7월에는 미사일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대기권 외에서 탄도미사일을 격추할 수 있는 THAAD 시스템 도입을 결정했다. 이 결정으로 인해 중국은 박근혜 정권의 대북 정책에 반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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